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르 초이 (문단 편집) === 한국과의 관계 === [[한국]]에서는 초이의 아버지가 [[고려인]] 출신이지만 [[소련]] 국적자이기도 해서 초이도 소련 출신 가수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체성과 관련된 그의 메모나 일기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는 다민족 국가인 소련 인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현재도 [[러시아]]를 포함한 구 소련계 국가들에는 [[백인]]과 [[동아시아인]]의 [[유라시안|혼혈]]이 많다[*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부터가 집안 자체가 [[튀르크]]계-[[러시아인|러시아계]] 혼혈이었다.]. 일단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소련]] 국적'''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고려인]]으로 [[러시아]]에 정착한 게 맞지만,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고 빅토르 본인은 당시 소련 국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희박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빅토르와 비슷한 고려인 3세 또한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러시아 국내여권]]에는 자신의 민족이 적혀있는데, [[고려인]]들은 [[한국인|한국계]]임이 명기되어 있어서 최소한 자신이 어느 민족 출신인지는 자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신장함에 따라 자신의 핏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고려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러시아 밖의 고려인들은 오히려 러시아와 엮이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빅토르가 고려인이라는 것이 빅토르의 민족 정체성을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다. 그의 노래에서는 수많은 비유와 은유들이 나오지만, 그 중 [[한국]]과 관련돼 있거나 자신의 핏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빅토르 초이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한 한국계 러시아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를 통해 자신이 동경하는 세계와 자유, 그리고 [[소련]]의 변화를 외친 소련의 청년 가수"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그의 홍보 담당자이자 프로듀서였던 유리 아이젠슈피스(Юрий Айзеншпис)는 회고록에서 초이가 [[모스크바]]에 위치한 한 [[고려인]] 식당의 단골이었으며, 그 식당에서 초이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고려인|한국계 소련인]]들의 대표'로 여겨졌기에 매우 환영받았다고 서술했다. 또한 키노는 전국적 인기를 얻기 전에 투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슈퍼스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의 고려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또 초이는 당시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숙소를 애용했는데, 숙소를 운영하는 고려인들이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고로 최소한 당시 [[소련]]의 고려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초이의 가장 가까운 지인 중 하나인 라시드 누그마노프의 Q&A에 따르면 초이는 자신의 한국 혈통에 관심이 있었으며 [[한국 요리]]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이 '한국 요리'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혹자는 코레이스키 마르코비(Корейский морковь)로 추측하기도 한다. 당근을 얇게 채썰어 기름 등에 무친 일종의 샐러드인데, 사실 한국 고유의 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고려인들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국식 요리나 반찬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주류 반찬으로 자리잡았으며, [[짜장면]]과 [[라멘]] 그리고 [[캘리포니아 롤]]처럼 '본국과 크게 괴리된 본국 요리'의 사례로 꼽힌다.] 다만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인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은 물론 전반적인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음악 커리어를 만들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일장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구매했는데, 그 유명한 올림픽 공연 당시 이 티셔츠를 입고 나와 "반자이!"를 외친 영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외에도 사망 당시에는 일본의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와 조인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예당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90년 겨울 즈음 한국 공연 역시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http://daskraftwerk.tistory.com/140?category=967294|출처]]. 정리해보면 당대 [[고려인]]들에게는 [[한국인|한국계]]의 대표격으로 환영받을 만큼 순수하게 [[소련인]]이라기보단 고려인 계열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빅토르 초이 본인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강하게 발현되었다고 보기엔 현재까지 마땅한 내용이 없다. 그가 더 오래 살아 [[동아시아]] 곳곳에서 공연도 하고 한국을 직접 더 접하고 관련되어 이야기가 나왔다면 몰라도, 현재까지 주어진 그에 대한 정보를 종합했을때는 자신의 혈통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었다는 정도로는 정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한국의 진성 키노 팬들은 초이와 한국을 엮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심하면 아예 '최' 라는 식으로 쓰지 말라고 하기까지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러시아에선 한국어를 배우면 빅토르의 한국 혈통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오히려 '최' 로 쓰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이질적인 문화여서 그런지 해외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높다. 극단적인 예로는 [[와패니즈]]나 [[오리엔탈리즘]] 등. 물론 이 또한 빅토르 자신이 가졌던 정체성과는 다르다는 점을 유의할 것.] 국내에서 '고려인 혈통' 운운하며 가족사를 줄줄이 늘어놓고, '한국의 피를 가진 러시아 최고의 락스타' 같은 타이틀까지 붙여가며 방송한 경우가 많았으며,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생긴 2020년대에도 키노나 빅트로 초이에 대한 한국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적어도 혈통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시작한다.[*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영상이더라도 아예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혈통을 얘기한다. 말하자면 '국내에는 이런 혈통이라서 고려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러시아 가수라고 보는 게 맞을듯' 같은 식.]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면 팬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만, 동시에 한국에 잘 알려진 것도 이러한 마케팅(?)이 한몫하긴 했다. 한국계가 아니면 일반인은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 뻔하기에...[* 당장 나무위키에 소련 및 러시아의 밴드와 뮤지션들에 대한 문서가 스무 개가 넘지만, 빅토르 초이에 대한 문서만큼 조회수나 편집수가 높은 문서는 전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